주변환경
2010.04.03 13:55

효성재 대청덧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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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복원된 조견당 사랑채인 '효성재' 대청에는 대들보 옆에 작은 보가 하나 걸렸는데

이는 한옥의 수명을 2백년 이상으로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다.

백 년도 못살면서 2백 년을 보장한다는 덧보를 설치했다.

그래도 한옥은 오래가야 하고, 비록 지금 주인이 가고 없어도 누군가는 살 집이 아닌가.

 

기둥 위에는 도리와 보가 얹힌다. 이 사진에는 보 대신 추녀가 얹혀 있다. 모서리이기 때문이다.

기둥과 도리, 보가 한옥 건축의 기본 요소이다.

이 기본 요소 외에 추녀 라는 팔작지붕 모서리에 들어가는 거대한 목재가 있는데,

이 목재가 한옥의 수명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놀랄 것이다.

 

저 목재가 무엇이길래 한옥의 수명과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한옥의 추녀는 보통 대청의 가장 큰 보인 대들보의 크기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단지 대들보는 원자재 대부분을 둥근 형태로 크게 훼손하지 않고 쓸 수 있고,

또 목재 대부분을 드러내놓고 우람함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쓰여지기도 하지만,

추녀는 양 옆은 기둥 정도의 크기로 다듬는 대신

상,하는 목재의 원 자재 크기 거의 그대로를 쓰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 비해 보이지 않는 부분이 큰 부재이다.

추녀는 크기로만 따지자면 숨어있는 대들보이다.

 

따라서 추녀는 자체의 무게도 상당할뿐만 아니라 

추녀 위에는 팔작지붕의 내림마루 기와가 얹혀져 그 하중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추녀 위에 걸리는 하중은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하중이 많이 걸리는 곳에 하자가 발생할 확률이 그만큼 높고

따라서 추녀쪽에서 하자가 시작된다는 것이 한옥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아무리 견고하게 짜맞추고 서로 물려있어 빠지거나 뒤틀리지 않는다 해도

세월이 지나가면 결구도 헐거워지고 물려있는 목재가 썩거나 부러지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결국 무겁고 하중을 많이 받는 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법,

추녀를 물고 있는 상부의 목재에 이상이 생기면 추녀는 조금씩 흘러내리거나 아래로 내려앉게 된다.

추녀 끝이 아래로 향하면 반대방향은 시소의 원리대로 위로 들리게 되어있는데,

이렇게 되면 추녀가 기와를 들고 일어나 비가 새는 결정적인 하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옛 말에 '기와 한장이 집 한 채를 망가뜨린다'는 얘기가 있다.

비록 기와 한 장이 새지만 그리로 비가 들어가 목재를 썩게 하고

그로 인해 집 전체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집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는 말이다.  

한옥은 엄격히 말하면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집이다.

기와는 흙이냐, 돌이냐, 흙에 훨씬 가깝다.  

더구나 대들보와 함께 거대한 부재인 추녀를 누가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지만 추녀를 잡는 것이 결국 지붕 전체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함부로 엄두를 낼 일도 아니다.

대책 없이 비가 새는 걸 이리저리 틀어막다가 결국 집이 무너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추녀가 내려앉기 시작했다면 적어도 백 년 가까이 된 집이라고 봐야 된다. 

 

폐가에 가보면 추녀가 먼저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녀가 들리고, 기와가 같이 일어나고, 거기에서부터 비가 새고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추녀가 떨어지는 것이 한옥의 일생이고

일종의 정해진 순서처럼 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자가, 그것도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하자가 발생하는 추녀를

어떻게 빠지지 않게, 내려앉지 않게 고정시키느냐가

한옥의 수명을 연장하는 핵심 사안이라는 결론에 어렵지않게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간단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공구가 발달된 시대에는 그건 뭐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지런하고 직선의 서까래가 열병하듯이 잔뜩 긴장감 있게 늘어선 대청의 가구에

상당한 변화와 다소 이례적인 배열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도 아무런 하자없이 백 년은 보장한다는 목수의 말에,

그럼 2백 년, 혹은 그 이상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덧보'만 있으면 2백년은 거뜬히 보장이 된다는 말에 집주인은 혹하고 말았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시공사와 목수, 그리고 집주인은 추녀의 한계 2백년에 도전하기로 의기투합했고

그래서 위 사진에서 보듯이 대들보 옆에 덧보가 하나 더 걸리게 되었다.

상당한 비용이 추가되었다. 추녀를 잡는 부재이니 덧보도 상당히 커야한다.

그 큰 추녀를 잡으려면 이 정도의 부재는 돼야 한다.

그래야 아래에서 잡아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사진 오른쪽이 대들보이고 왼쪽에 걸린 것이 수명 2백년을 보장한다는 덧보이다.

 

덧보에 구멍이 하나 크게 뚫려있는 것은 바로 추녀를 잡는 비밀의 구멍이다. 

그 위로 지나가는 상량과 종도리에 구멍을 뚫어 직경 3cm정도의 철심으로 연결해

아래 위를 볼트로 조이는 것이다. 생각보다 아주 쉬운 일이다.

요즘 공구가 1m정도의 구멍을 뚫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무도 거기에 구멍을 뚫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생각만 하면 어렵지 않은 공정이다.

 

이렇게 하면 추녀는 단순히 걸쳐있는 것이 아니라 지붕의 중간을 지탱하는 부재인

상량과 종도리에까지 강력한 철심으로 연결돼 빠질래야 빠질 수도 없고,

내려앉을래야 내려앉을 수도 없는, 하자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시공이 이뤄지는 것이다.

 

조견당 사랑채인 효성재의 추녀는 이렇듯 강력한 지지대를 갖춤으로써

그대로는 백 년, 이렇게 하면 2백 년 보장이라는 목수의 말대로 시공이 이뤄지게 되었다.

 

언제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였던 혜화동 이화장에 갔더니

새로 지은 건물인데 철심으로 비슷하게 고정한 것을 보고,

이 공법이 아주 새로운 기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옥의 수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옥의 구조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아니 고민했겠는가? 추녀가 빠지고, 흘러내리는 것을. 

 

백 년도 못살면서 2백 년을 기약하는 집을 짓고 나서의 소회는,

"그래도 집은 오래가야 한다, 비록 내가 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살 집이 아닌가."이다.

 

주천고택 조견당 사랑채인 효성재에는 2백 년을 보장하는 덧보가 걸려있다.

오래된 집에는 없는, 새로 지은 집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새 집이기에 새 기술과 자재가 들어와 더 좋은 한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것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일 게다.

[출처] 덧보에 대하여|작성자 큰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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