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환경
2010.04.03 13:58

효성재 선자서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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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당에는 아주 특이한 선자서까래가 있다.

평면의 밋밋함을 거부하고 곡면의 입체감을 살린,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선자서까래의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우선 목수가 기능적으로 가능해야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집주인과 목수의 의기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조견당 사랑채인 효성재 대청에는 한옥 건축에 있어

매우 특이한 구조물이 몇 가지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선자서까래이다.

보통 선자서까래는 추녀를 가운데 두고 중도리를 지나면서 부채살 모양으로 각이 꺾이고 합쳐져

둥근 서까래가 평면구조로 바뀌어 서로 짜맞추어 틈이 없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 서까래를 말한다.

 

효성재 선자서까래도 보통 선저서까래와 그리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보통의 선자서까래가 중도리를 지나 건축물 내부로 들어오는 지점,

즉 처마를 지나고 도리를 거치면서부터는 건축물의 내적 공간인데,

둥근 서까래가 각진 서까래로 깎여져 틈이 없이 마룻장을 마추듯 들어와

부채살 같은 모양을 갖추는 것과는 달리, 평면이 아닌 둥근 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선자서까래는 한옥의 공정 가운데 가장 어렵고 난해한 수학의 결과물인데,

목수 중에서도 상당한 경력의 소유자만이 이를 해낼 수 있는, 한옥 건축의 백미이다.

 

누구도 선자서까래를 선뜻 시공하지 못하는 마당에

이처럼 둥근 곡면을 보여주는 선자서까래는 당연히 효성재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고,

결론적으로 아주 성공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이를 깎고 맞추기를 마다하지 않고,

실제로 이를 깎고 맞출 기능을 가진 목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이는 실로 조견당 주인의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그 건축물을 짓는 소유자의 것이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 그 건축믈을 짓는 사람들의 기능과 정성에 의해 

그 결과물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견당 사랑채인 효성재를 올리면서 내내 행복했던 것은 

목수가 매우 헌신적이고, 할 수 만 있으면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점이다.  

 

그는 처음 소목일을 했었는데, 20여 년을 소목장으로 일해왔다고 한다.

(그 목수의 이름은 이영진씨이다)

소목이란 가구나 가재도구 같은 비교적 작은 생활용품을 만드는 목공작업을 말한다.

그는 소목일을 하면서 목재를 정교하게 다듬고 짜맞추는 일을 배웠고

이같은 그의 정교한 솜씨는 대목일을 하는데도 그대로 이어졌다.

 

물론 거칠게 일하고 대충대충 넘어가야 공정기간을 단축하고 결과적으로 그래야 돈이 된다. 

그는 그렇게 일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집을 짓는데 가구를 짜는 것처럼 일을 한다면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집이 만들어 질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일,

효성재의 선자서까래가 바로 그가 소목장 출신임을 증거해주는 아름다운 선자서까래로 탄생한 것인데,

그는 평면의 밋밋한 짜임새를 거부하고 보다 입체감 있고 나뭇결까지 살릴 수 있는

곡면의 난해한 선자서까래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는 마치 조견당 안채의 수령 8백년의 소나무 대들보를 수평으로 다듬지 않고

상방으로 곡을 잡아 우람하면서도 입체감과 운동감까지 살린 200년 전 어느 목수의 장인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돼 참으로 감개무량했던 감동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건축도 하나의 창조이고, 이를 만드는 사람이 고도의 기능과 예술혼을 지녔다고 볼 때  

그의 기능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그의 창의정신 또한 건축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이번 효성재 건축을 통해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효성재는 한옥건축사적인 면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둥근 선자서까래, 이것은 조견당 사랑채인 효성재 대청에서만 볼 수 있다. 

 

[출처] 선자서까래|작성자 큰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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