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환경
2010.04.04 13:16

안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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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은 보통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와 마주보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행랑에는 안채의 일을 돌보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행랑의 크기는 보통 세 칸에서 다섯 칸, 때론는 일곱 칸에서 아홉 칸까지 크기가 다양했습니다.

 

그 집의 살림의 규모에 따라 일손이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에

행랑의 크기는 그 집 살림의 규모와 비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랑에는 사람이 기거하는 방과 부엌이 당연히 있었지만,

여기에는 마굿간이나 변소, 광 같은 공간도 있었습니다.   

솟을대문 양 옆에 한 칸씩 방을 꾸민 세 칸 짜리 단촐한 행랑에서부터,

디딜방아와 찬광, 부억의 역할을 하는 다용도실 같은 공간을 갖춘 아홉 칸 이상의 긴 줄행랑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 사진에서 보는 조견당 사랑채는 아무래도 위에 적은 내용의 행랑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선, 여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대게의 행랑채 지붕이 맞배지붕인데 비해

이 건물은 한옥의 격식을 갖춘 팔작지붕으로 돼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행랑채가 측면 1칸으로 보통 10자이거나 그 이하인 8자, 심지어 6자 짜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견당 사랑채는 측면 15자, 4m 20cm로, 일반 안채나 사랑채의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언뜻 보기에는 이 건물이 행랑채 처럼 보이지만 실은 행랑은 아닙니다.

또 방도 일반적인 행랑방에 비해 상당한 크기의 방이 만들어 졌습니다.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세 개, 그리고 대문간, 부엌 대신 보일러실이 들어섰습니다.

모두 6칸이  안사랑채입니다.

사랑채 바깥 대청마루와 방 네 개가 바깥사랑채입니다.

 

조견당에도 일반적인 그런 크기와 형태의 행랑이 있었습니다.

밤나무 앞에서 시작해 제방이 있는 강가에 까지 모두 27칸의 줄행랑이 있었답니다.

거기에는 방만 17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중간 중간 문이 있었는데, 큰 대문이 하나, 작은 중문이 두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1941년, 일본 사람들이 주천강에 제방을 쌓으면서 행랑의 일부가 헐어졌고,

6.25 때 까지만 해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온 행랑이,

전쟁이 나면서 인민군과 국군이 교대로 진주하면서 폭격을 맞아 흔적도 없이 소실된 것입니다.  

 

2007년, 조견당 사랑채를 복원하면서 안채 앞에 행랑도 지어야 했는데,

사랑채 규모와 동일하게 측칸 15자로 'ㄴ'자 집을 짓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집이 밖에서 보면 일정부분 담장의 역할도 하고 안채와 가까이 있어

안채의 살림살이와 밀접한 공간이라고 할 때,

조견당 사랑채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기능적으로는 행랑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행랑에 비해 넓고, 사진에 보듯이 비교적 번듯한 툇마루를 갖추고 있어

어쩌면 이전에 없었던 고품격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석 주초와 8치 짜리 각기둥을 갖춘,

여느집 사랑채와 같은 규격의사랑채가 조견당에 탄생했고,

이는 조견당을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도,

구조적인 강점을 갖춘 아주 새로운 건축물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출처] 조견당 행랑|작성자 큰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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