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환경
2010.04.03 12:21

조견당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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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당 담 밖 정면에서 바라본 조견당의 모습입니다.

꽃이 핀 것을 보니 4월 말 쯤인 것 같습니다.

 

원래 정면에 보이는 구부러진 소나무 뒤에는 대문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사랑채 공사를 하면서 대문을 없애고 담으로 막았습니다.

 

그 대문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 생긴 문입니다.

원래는 없었던 것인데, 전쟁 후 아버지가 여기에 문을 낸 것입니다.

지금 행랑 자리에 있던 솟을대문에 있는 큰 문짝을 떼어내 이곳으로 옮겨와

새로 대문을 만들었습니다.

 

전쟁기간 인민군과 국군이 교대로 진주하면서 조견당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안채만 남기고 폭격으로 거의가 불에 타거나 훼손됐습니다.

 

그 대문으로 다닌지 40년이 지났기에 조견당 자식들은

그 문을 그냥 대문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 불탄 행랑 자리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흙집으로 몇 칸의 행랑을 대문 양쪽으로 붙였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대문만 덩그러니 있었고 좌우의 초라한 행랑과는 도무지

격과 모양이 맞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고, 나중에는 새마을운동으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습니다.

 

1996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행랑을 허물고 대문만 다시 세웠습니다.

일단 조견당 앞 풍경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 대문을 향해 길을 내었습니다.

이 길이 이전에는 논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택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조견당 대문에 대해 묻곤 했습니다.

여기가 원래 대문이 있던 자리가 맞는지. 이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언젠가 행랑채가 복원이 되면 다시 대문을 원래 자리로 돌려 놓을 생각이었는데

지난해 사랑채를 복원하면서 정면에 다섯 칸 행랑을 붙이면서 그리 대문을 옮겼고

40년이 넘게 다니던 문과 통행로는 없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40년 길들여졌던 그 길에 대한 추억 때문에

이 길은 지금도 이렇게 옛날의 동선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참, 우리나라에서 '기'에 대해 둘째 가라면 서운해 할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인데,   

"조견당 담 안과 밖의 기운이 완전히 다르다, 안은 고요한데 밖은 요통을 친다,

담 밖에는 패찰을 놓아보면 지남철이 요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자력과 파동이 매우 크게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이 길을 '기'를 느끼는 길로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조견당에도 다녀가신 이재석 박사의 말입니다.

'기의 길', '기 체험의 길'.

 

다시 대문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은 이 길과 대문을 기억합니다.

40년이 넘게 이어진 생활습관과 거리와 공간에 대한 지각의 학습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테지요.

 

그래서 이 길에 꽃도 심고 나무도 가꾸고 그럽니다.

이것도 조견당의 역사의 흔적이기에...                          

 

[출처] 밖에서 본 조견당|작성자 큰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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