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환경
2010.04.03 12:58

주천 의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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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조견당 어른이 지금의 조견당 주인을 데리고 선산인 금산으로 갔다.

때는 1970년대 중반 쯤으로, 내가 중학교 2학년 정도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가시나무 깊숙히 감춰진 비석 하나를 끄집어 내시고는

꼬챙이로 비문의 글씨를 따라 흙을 파내시며 의義, 호虎, 총塚,이라고 글씨를 읽으시고는

이것이 호랑이 묘에 있던 비석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호랑이 묘는 이미 오래 전 없어지고 금씨네 산소인 듯 묵묘가 두어 기 있었는데,

그 위에 가시나무가 굵게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아 산소를 돌보지 않은지 꽤 오래 돼 보였다. 

 

아버지는 옛날 금씨 성을 가진 사람이 금산밑에 살았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병이 들어 약을 구해와야 하는데

앞에 있는 주천강에 장마가 져 건널 수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애를 태우며 발을 구르고 있는데,

어디서 집채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길래

이를 탔더니 주천강을 무사히 건너주었고,

다시 강을 건너와 어머니에게 무사히 약을 지어 드려 병구완을 했다고 한다.

 

이 호랑이는 이후 무슨일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 금씨를 도와 주었는데,

어느날 나라의 임금이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금처사는 묘막을 짓고 3년 시묘를 살았는데

이 때에도 호랑이가 나타나 토끼와 노루 등을 잡아다 주어 금씨가 굶어죽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이후 호랑이는 늙어 금씨네 마당에 와 숨을 거두었는데

금씨 집안에서는 호랑이를 후히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한다.

 

그 후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기이하고 가슴 뭉클한 사연이어서

이를 비석에 새겨 호랑이 묘에 세웠다고 하는데 이 비석이 바로 그 비석이다.

 

설명을 마친 아버지는 비석을 다시 가시덤풍 너머에 있는 바윗돌 쪽으로 밀어 넣으시며

혹시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지 모르니 잘 간수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후 이곳을 찾을 때마다 이 비석이 잘 있는지 확인했고,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이를 찾거나 보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

비석이 있는 자리가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대게는 처음 있던 바윗돌 근처에 있어 왔다.

 

그러던 것을 2002년 겨울, 지금 군수인 당시 박선규 면장이 이 비석의 존재를 듣고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어 '효'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예산을 세워 다음해 봄인 2003년 지금의 의호총 자리에 공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출처] 의호총|작성자 큰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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