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견당 각종행사
2010.04.04 13:08

조견당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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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당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깃발이다. '주팔정송삼등'이라고 적혀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깃발은 조견당에 적어도 몇 대 째 내려오는 물건이다.

집안 어른들이 6.25전쟁 때 피난을 가면서 족보는 두고 갔으면서 이 깃발을 챙겨 간 걸 보면

이 하찮게 보이는 물건이 족보보다 더 의미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붉은 광목 바탕에 흰색 회로(재료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쓰여진 여섯 자 글씨는 오래됐지만

누가 보아도 잘 쓴 글씨이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 때문에 이 깃발을 만들었을까.

또 이 깃발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60년대 중반쯤, 내가 대여섯 살 때쯤,

이 깃발은 종종 밖으로 나올 기회가 있었다.

난 이 깃발을 장대에 매달아 들고 나가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있다.

 

주로 두레로 품앗이를 할 때 이 깃발을 들고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4,50 명의 장정들이 모내기를 하거나, 논을 매거나 가을에 벼을 벨 때 이 깃발이 동원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깃발을 들고 있는 우리 아버지는 논에 엎드려 논을 매는 사람과

똑같이 품 하나를 인정받았다. 물론 풍물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품 하나였다. 

그러니까 이 깃발은 우리가 흔히 본아온 '농자천하지대본'과 같은 농기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깃발을 단순한 농기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농기와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바탕색이 일반적인 농기가 흰색인데 비해

이것은 붉은색이어서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자극적이다.

또 쓰여 있는 글귀도 '주팔정송삼등'이라고, 글씨는 쉽고 단순하나

그 의미를 해석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주팔정송삼등(周八政宋三登)에서 주팔정의 의미는,

하나라 우왕이 남겼다는 정치이념인 홍범구주, 즉 9가지 큰 법이라는 뜻인데,

팔정이란 양식관리, 재정, 제사, 교육, 범죄단속, 손님접대, 양병, 토지관리 등을 다루는

정책을 말하는데 정치의 기본 골간을 이룬다고 하겠다.

즉, 주나라 정치가 밝아 태평성대였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또 송삼등은 송나라 때 역시 올바른 정치로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데서 이를 따와,

우리도 이를 본받아 태평성대를 누리자는 뜻으로 이렇게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소 독특하게 생긴 깃발이 일반 농기와 같은 역할을 해 온 것만은 틀림없는데,

그럼 왜 다른 깃발처럼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쓰지 않았으며, 붉은색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이 깃발의 주인인 내가 생각해 보건대,

이 깃발은 평시에는 농기로 쓰였지만 어떤 특별한 시기에는 특별한 용도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색깔이 우선 붉은색이어서 상당히 자극적이고 얼핏 전쟁 때 쓰이는 군기를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면 이 깃발이 왜 조견당에 있으며 왜 목숨처럼 아끼는 족보 보다 더 대접을 받았던 것일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마을에 두고 두고 내려온 오래된 풍물이 우리 집에 있었던 거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징, 괭가리, 북, 장구, 소고 등 명절이나 당고사 등을 지낼 때면 무시로 들고 나가 치던 풍물과

이 깃발과는 분명 어떤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나의 선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40년 넘게 '대동계장'을 지내왔던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견당이 단순히 집이 넓어서 풍물이며 깃발을 보관해 왔던 것일까.

 

내가 어릴적 동네 사람들은 마을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날'을 받았는데,

이 날을 잡아주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다.

또 그 날이 가까워지면 다들 우리집에 모여 행사를 준비했는데

그 비용은 마을 사람들에게 모조리 추렴을 해서 썼지만

항상 비용이 모자라 모자라는 비용은 우리집에서 늘 충당을 하곤 했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고, 이를 준비하고, 비용을 대고, 그 절차와 방식을 주관하는 사람,

그 사람이 '대동계장'이었고 거의 대대로 이를 우리 선대에서 맡아왔기 때문에

풍물이며 깃발이 조견당에 있어왔던 것이다. 

 

대동계장이야말로 그 커뮤니티의 좌장이요, 그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통솔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친께서는 피난길에 나서는 급박한 시점에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이 깃발은 챙겨 나가셨던 것이다.

 

다시 돌아왔을 때 마을의 구심점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상징물인 이 깃발의 효용과 중요성을 선친은 알았던 것이다.

이 깃발은 그 지역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소지하고 있으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를 마을의 단합과 사람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상징물로 써 왔던 것이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이 깃발을 내걸고 구한말 의병을 모으기도 했으며,

이웃 마을과 패싸움 하는데도 들고 나갔다고 한다.

또, 대보름이나 한가위 등 명절에도 이를 들고나가 한바탕 놀았다고 하니, 

깃발 하나가 참으로 요긴하게 쓰여진 셈이다.

 

이제 이 깃발을 들고 나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내기도 없어졌고, 논을 맬 일도, 벼를 벨 일도 없어졌다.

또 이 깃발 앞에서 목숨을 건 의병에 자진 입대할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이 깃발은 지난 세월의 역사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감내하고 목격한 산 증인으로

다시 우리 앞에 있는 것이라고 본다.

 

비록 해지고 낡아 아무도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붉은 천에 쓰인 알쏭달쏭한 문구의 이 깃발의 존재에 대해

이 시대는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출처] 조견당의 깃발|작성자 큰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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